한국사 기출 문제풀이(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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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급과정 기출문제 풀이 3강

한국사 고급과정 기출문제 풀이 3강 상세 내용
제작 광주교육정보원 조회수 1501
카테고리 2016년
안녕하세요? 강의가 진행될수록 내용도 조금은 어려워지고 배워야 할 내용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절대 네버~ 포기하시지 마시고 꼭 완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인거 아시죠. 포기를 모르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번 3강에서는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백제의 성립과 발전, 신라의 성립과 발전에 대하여 기출 문제를 풀어보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번 문제입니다. 
자료를 보니 삼국 시대 어느 왕에 대한 업적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 어떤 왕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럼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키포인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키포인트는 바로 북한산을 순행했다는 것과 순수라는 부분입니다. 북한산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여기서는 한강 유역의 서울 지역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라 진흥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중 하나인 북한산순수비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더 찾기가 쉬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진흥왕은 한강유역을 완전히 장악한 후 북한산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선택지에서 신라의 진흥 왕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수도에 동시전을 설치하였다는 6세기 초 지증왕 때의 사실입니다. 동시는 지금의 시장의 개념이고 동시를 관리하는 기구가 바로 동시전입니다. ②번 첨서대를 세운 것은 7세기 선덕여왕때의 일입니다. ③번 율령을 반포한 것은 법흥왕때의 일입니다. 법흥왕은 율령반포, 불교수용등의 중요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번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증왕때의 일입니다. ⑤번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일대를 장악한 것은 진흥왕의 업적입니다. 정답은 ⑤번입니다.

그러면 진흥 왕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흥왕은 청소년 수련 집단인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고 함경도까지 올라갔으며 남으로는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까지 진충하였습니다. 이러한 진흥왕의 업적은 단양 적성비와 황초령비, 마운령비, 북한산비, 창녕비의 4개의 순수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수라는 뜻은 왕이 자기 영토를 만들고 그곳을 돌아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지도를 통해 이 비석들의 위치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번문제입니다.
고구려의 수도 변천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고구려의 수도는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그리고 다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지만 이 문제를 풀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가)와 (나)는 각각 어디일까요? 예 바로 국내성과 평양입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면서 옳은 내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ㄱ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하고 본격적인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충주 고구려비는 한강유역을 장악한 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ㄴ 불교가 수용되었던 것은 소수림왕때이므로 국내성이 수도일때입니다. ㄷ 위의 장수 관구검에게 공격을 받아 국내성이 함락되었던 시기는 동천왕일 때 이므로 국내성이 수도일 때입니다. ㄹ 7세기 전반에 고구려는 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연개소문이 주도하여 당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았습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3번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풀어본 2번 문제와 아주 유사한 형태의 문제입니다. 22회에 수도의 변천과 관련된 문제가 나왔는데 비슷한 형태의 수도 변천 문제가 24회에 또 나왔습니다. 이렇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비슷한 유형과 내용의 문제가 출제되기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듣고 계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 풀이 강의를 꼭 끝까지 완강하시기를 바랍니다. 3번 문제는 백제의 수도 변천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으로 다시 사비로 천도하였습니다. 한성은 지금의 서울이고 웅진은 공주, 사비는 부여입니다. 백제는 개로왕때 고구려에 한성을 빼앗겼습니다. 수도를 빼앗겼으니 많이 괴로웠겠죠? 그래서 개로왕이다 라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편 할거라고 생각되네요. 개로왕의 아들인 문주왕은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한성에서 웅진으로 수도를 천도한 것은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이후 성왕은 나라가 점차 안정적으로 변하자 대외 진출이 쉽고 조금 더 넓은 지역인 사비로 수도를 천도하였습니다. 사비천도는 일부려 더 발전하지 위해서 수도를 옮긴 것입니다. 자료 속에 있는 (가)는  웅진이고 (나)는 사비입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면서 옳은 것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ㄱ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한 것은 근초고왕때의 일로 당시 수도는 한성이었습니다. ㄴ
은 웅진 시기 무령왕때의 일입니다. ㄷ 서기라는 역사서의 편찬은 근초고왕때의 일입니다 ㄹ 사비 시기 신라의 성왕과 연합하여 일시적으로 한강유역을 되찾았지만 배신한 신라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성왕은 이를 되찾기 위해 신라를 공격하다가 관산성에서 죽게 됩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그러면 백제의 수도별 왕의 업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성이 수도인 시기에 왕의 업적으로는 고이왕때 율령을 반포하였으며 관등제를 정비하고 관복제를 마련하였고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근초고왕때는 백제의 전성기로써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마한을 병합하였으며 요서와 산둥 규수 등 중국과 일본으로 활발히 진출하였습니다. 웅진이 수도인 식시에 왕의 업적으로는 무령왕때 왕자나 왕족들을 스물 두 곳의 지역으로 파견하여 지방을 통제하게 하는 이십이 담로를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중국 남조와 교류하였는제 무령왕이 무덤인 바로 중국 남조의 무덤 양식인 벽돌무덤입니다. 사비가 수도인 시기에 왕의 업적으로는 성왕 대 중앙과 지방 통치 제도를 정비하였고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일시적으로 회복하였지만 배신한 진흥왕의 공격을 받고 다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4번문제입니다.
바로 전에 백제의 수도별 왕의 업적에 대해서 이해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문제의 키포인트 바로 보이네요.  사비 시기입니다.  사비시기는  538년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여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 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사비가 수도였던 시기의 내용이 아닌 것을 찾으면 정답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백제가 중국의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4세기 후반 침류왕때입니다. 이 때의 수도는 한성이었습니다. ②번 성왕은 백제의 중흥을 도모하면서 신라 진흥왕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일시적으로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가 배신하여 공격을 받게 되어 한강 유역을 다시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성왕은 신라 공격에 직접 나섰다가 관산성에서 죽게 됩니다. ③번 성왕은 사비로 천도한 후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습니다. ④번 성왕은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 정비하고,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수도를 5부, 5방으로 하였습니다. ⑤번 7세기 초 무왕은 백제의 중흥을 도모하면서 미륵사 등과  같은 대규모 사찰을 건립하였습니다. 정답은 ①번입니다

5번문제입니다.
자료를 통해 등장하는 인물이 고구려왕과 신라의 신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속의 신라의 신하는 바로  김춘추입니다. 김춘추는 백제에 의해 대야성에서 자신의 딸과 사위가 죽임을 당하자 고구려 보장왕과 실질적인 지배자인 연개소문을 찾아가 동맹을 제안하였습니다. 자료는 바로 그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택지에 김춘추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신라의 삼국 통일은 문무왕때 완성되었습니다. 문무왕은 나당연합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욕심을 보인 당을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완성시켰습니다.  ②번 성골 출신의 신라 마지막 왕은 진덕 여왕입니다. 진덕 여왕에 이어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면서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습니다. ③번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선덕 여왕이 당에서 귀국한 승려 자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세웠습니다. ④번 김흠돌의 난은 삼국 통일 후 신문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신문왕은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계기로 귀족세력을 숙청하고 정치 제도를 재편하여 왕권을 전제화시켰습니다. ⑤번 김춘추는 고구려와 동맹이 실패한 후 당으로 건너가 나당연합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집사부를 설치하였습니다. 정답은⑤번입니다.


그러면 신라의 왕에 대하여 중요한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물왕은 마립간이라는 칭호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미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직 백제는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썼다는 것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중국의 영향을 받지 못해서 발전이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내물왕때는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왜를 격퇴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로는 신라가 고구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호우명 그릇과 광개토 대왕릉비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눌지왕은 백제와 동맹이 체결되었고 지증왕때는 처음으로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사부를 시켜 우산국을 복속시켰으며 우경을 장려하였습니다. 법흥왕은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하였고 율령을 반포하였습니다. 불교수용과 금관가야를 정복하였습니다. 진흥왕은 화랑도 정비와 영토 확장을 하였습니다. 진흥왕의 영토확장에 대해서는 앞에 문제에 살펴보았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선덕여왕때는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이 건립되었고 진덕여왕은 성골계의 마직막 왕이었습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왕입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완성시켰습니다. 이때부터 통일 신라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6번 문제입니다. 
자료에서 정답을 구할 수 있는 키포인트가 나와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정사암입니다. 정사암은 백제시대에 정치를 논의하고 재상을 뽑던 장소입니다. 국가에서 좌평을 선출할 때 그 후보가 될 만한 3~4명의 이름을 바위 위에 두었다가 귀족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사람을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백제의 정치가 귀족연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에 들어갈 나라는  백제입니다. 그러면 선택지에서 백제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에 제한이 있었던 나라는 신라입니다.②번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에게 곡식을 빌려준 것은 고구려입니다. ③번 화랑도는 신라입니다.④번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다가 바로 백제입니다. 백제의 지배층은 부여씨와 진, 사, 해와 같은 8성의 귀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중국 선진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중국의 고전, 한문을 능숙하게 구사하였다고 합니다. ⑤ 경당은 고구려의 지방교육제도입니다. 고구려의 경당에서는 유학과 무술을 교육하였습니다. 정답은④번입니다. 


그러면 삼국의 귀족 합의 기구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 지배층은 왕족인 계루부를 비롯한 5부 출신의 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제가 회의를 통해서 나라의 각종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습니다. 백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정사암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화백회의라는 귀족 합의 기구가 있었지만 특별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만장일치제였습니다, 한 명의 반대자라도 있으면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공평한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러한 화백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대등이라 불렀는데 모두 평등한 자격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7번문제입니다.
(가) 시기와 (나)시기가 어느 시기인줄 알고 그 사이에 있었건 내용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제일 먼저 (가)와(나)시기를 파악해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와 (나) 시기를 알 수 있는 키포인트는 어디일까요? 바로 (가)에서는 신과 라 즉 신라라는 국호를 사용했음을 통하여 지증왕때임을 알 수 있고 (나)에서는 관산성에서 백제의 왕이 죽었다라는 부분에서 진흥왕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사이의 일을 선택지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것은 475년으로 신라로 보면 지증왕 이전의 일입니다. ②번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킨 것은 선덕영왕때의 일로 진흥왕 이후의 일입니다 ③번 고구려가 낙랑을 축출한 것은 4세기 고구려 미천왕때의 일로 지증왕 이전의 일입니다.  ④번 신라가 금관가야를 복속시킨 것은 법흥왕의 업적으로 지증왕과 진흥왕 사이에 해당합니다.⑤번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군을 물리친 것은 문무왕때의 일로 진흥왕 이후의 일입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8번문제입니다.
비석의 위치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위치와 내용을 바탕으로 어느 나라의 비석인지 알아야 정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어떤 비석인지 알 수 있는 키포인트는 어디일까요? 바로 고구려 대왕과 신라의 왕을 뜻하는 마립간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지도상에서 충청도 부분에 비석이 있다는 사실 이 세부분이 키포인트입니다 비석의 위치가 한반도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의 마립간이라는 칭호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석은  장수왕 시기에 충주에 세운 중원고구려비입니다. 장수왕은 평양천도를 실시한 후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남하 정책을 실시합니다.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강 유역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충주에 세운 비석이 바로 중원 고구려비입니다. 그러면 선택지에서 중원고구려비의 내용이 아닌 것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①번 태자 공 대사자 다우환노 등을 통해 고구려 관등명이 기록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번 고구려가 신라를 동이 매금으로 칭하고 있는 부분을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③번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고구려의 비석입니다. ④번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였음을 보여주는 비석입니다. ⑤번 고구려가 신라의 요청으로 왜를 격퇴한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정답은⑤번입니다.


그러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업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잘 알려진 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만주 지역으로 지배권을 확대하였습니다. 또한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여 신라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 바로 호우명 그릇과 광개토대왕릉비입니다. 이 호우명 그릇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실에 가시면 사진속에 보이는 호우명 그릇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그릇은 장수왕이 아버지의 제사에 맞추어 특별 제작한 기념 그릇입니다. 그러면 왜 고구려의 그릇이 신라에 있었느냐? 아마도 광개토대왕의 제사에 참석한 신라의 사신이 기념으로 받아왔거나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가 신라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인거죠. 4세기말 왜가 바다를 건너와 신라를 공격하자 신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광개토대왕이 군사 5만을 보내 왜를 격퇴했다는 사실은 광개토 대왕릉비문에 잘 나와있습니다 참고로 광개토대왕릉비는 광개토대왕이 세운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장수왕이 건립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비석도 세우고 그릇도 제사 때마다 새로 만들고 장수왕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효자였던 것 같습니다. 장수왕은 중국 남북조와 교류를 통하여 북쪽지역에 대한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남쪽으로진출을 시도하였습니다. 평양천도이후 남진정책을 통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단양적성비입니다. 
지금까지 3강 삼국의 성립과 발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4강에서는 고구려의 대외항쟁과 삼국통일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의 성립과 발전

1.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2. 백제의 성립과 발전

3. 신라의 성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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