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출 문제풀이(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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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급과정 기출문제 풀이 8강

한국사 고급과정 기출문제 풀이 8강 상세 내용
제작 광주교육정보원 조회수 1435
카테고리 2016년
안녕하세요? 역사교사 윤지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발해의 건국과 발전, 발해의 경제 및 사회 그리고 문화에 대하여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발해는 매회 1문제씩 출제 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따로 1강의 주제로 배우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번 기출 문제 강의를 잘 들으시면 1문제는 확보한다 생각하시고 강의를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1번 문제입니다.
자료의 내용은 당나라에서 발생한 발해와 신라 간의 쟁장 사건입니다.  쟁장 사건이란 발해와 신라가 897년 외교상 서열에 따른 자리 경쟁을 벌인 사건을 뜻합니다. 두 번째 자료의 내용은 발해와 신라간의 교역로 즉 신라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두 사건과 관련된 나라로 가에 들어갈 나라는 발해입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면서 옳지 않은 내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과 ②번 발해는 전성기인 9세기 전반 선왕 때에 5경 15부 62주의 지방 체제를 완비하였는데 이 때에 말갈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키고 서쪽으로는 요동 지방에까지 진출하였습니다. 동쪽으로는 연해주 서쪽으로는 요동 남쪽으로는 영흥 지방에까지 이르렀으며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되찾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발해를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을 가진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③번 발해는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왕들이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④번 통일 후 신라는 중앙 집권 체제로 제도를 재정비하여 집사부를 중심으로 관료 기구의 기능을 강화하였습니다. 집사부 시중의 지위를 높였고 그 아래에는 위화부를 비롯한 13부를 두고 행정업무를 분담하게 하였습니다. ⑤번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또는 고려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실이라든지 문화의 유사성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입니다. 727년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를 보면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이어받았다 라는 글이 있으면 759년 문왕이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 스스로 고구려 국왕이라 칭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2번문제입니다. 
자료의 밑줄 그은 부분을 보니 발해가 황제국임을 나타내는 자료가 발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당의 지방 정권이 아니며 황제국을 표방하는 당당한 자주권을 가진 국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국들로부터 심각한 역사왜곡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선조들이 이룩한 거룩한 발자취 측 우리의 역사가 왜곡되거나 폄하되는 일은 저와 여러분들이 꼭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최고의 대비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발해가 황제국을 표방한 것과 관련된 내용을 보기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ㄱ
발해관은 당이 산둥 반도의 등주에 설치한 발해 사신의 숙소이며, 이는 발해와 당이 교류했음을 보여줍니다. ㄴ 발해의 황제들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고왕 즉 대조영은 천통, 무왕은 인안, 문왕은 대흥 선왕은 건흥의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중국과 발해가 대등한 나라였음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ㄷ 정혜 공주는 문왕의 둘째 딸이며 , 정혜 공주 묘비에 있는 황상이라는 표현을 통해 발해는 황제국을 표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ㄹ 신라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발해에서 신라로 이어진 상설 교통로의 존재는 발해와 신라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답은 ③번입니다. 


발해의 건국과 발전에 대하여 왕들의 업적 위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왕 즉 발해를 세운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모아 동모산 근처에서 698년에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예전에 대조영이라는 사극 드라마에서 최수종이라는 배우가 대조영 역할을 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최수종 하면 대조영이라고 생각하시죠. 근데 최수종이라는 배우가 태조 왕건, 태양인 이제마, 무열왕 김춘추 등 사극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역사적 인물이 생각이 나기도 하겠네요.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써 요즘 사극 드라마가 인기 있는 것이 매우 즐겁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발해의 무왕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왕은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였습니다. 장문휴를 보내 당의 산둥 지방 공격하기도 하였으며, 돌궐 일본과 연계하여 당과 신라를 견제하였습니다. 문왕은 대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황상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당과 친선관계를 수립하여 당의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였습니다. 신라도라는 신라와 상설교통로를 개설하였고 당의 3성 6부제를 수용하였습니다. 교육기관인 주자감을 설치하였고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하였습니다. 선왕은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켰습니다. 요동지역까지 세력을 확대하였고 5경 15부 62주로 지방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이 무렵 중국인들이 전성기를 이룬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칭하였습니다. 발해는 왕의 업적별로 공부하시면 관련 문제가 나오더라고 문제를 맞출 수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발해가 대해서완벽하게공부하셔서 꼭 문제를 맞추기를 발해! 발해에 대해서 알기 발해!!! 조금 썰렁한 거 같으니 바로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3번 문제입니다. 
자료 속의 왕을 알 수 있는 키포인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발해의 왕이라는 부분과 흑수와 등주를 공격하였다라는 부분이 키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통하여 자료속의 왕이  발해의 무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발해의 무왕은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였습니다. 무왕의 영토 확장에 대응하여 신라는 북방 경계를 강화하였고, 흑수말갈도 당과 연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발해는 흑수 말갈을 공격하고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면서 정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발해의 무왕은 독자적으로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였습니다. ②번 10세기에 거란이 침입하였으며 이로 인해 발해의 국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③번 9세기 전반 발해는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이 무렵 당은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일컬어 해동성국이라 칭하였습니다. ④번 선왕 때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완비하였습니다. ⑤번 문왕 때 수도를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천도하였고, 연호를 대흥이라 칭하였습니다. 정답은 ①번입니다.


4번문제입니다.
자료 속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국가를 알 수 있는 키포인트는 어디일까요?  바로 고구려식 온돌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부분이 키포인트입니다. 고구려식 온돌등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에 대한 문제입니다. 고구려 멸망 후 만주 지역으로 흩어졌던 고구려 유민들은 대조영을 중심으로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발해의 건국 집단 구성과 지배 집단의 성씨 구성에서 고구려 계통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왕 시기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의 천손의식 이야기 하고 스스로 고려 국왕을 표방한 것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면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문화유산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중국 지린성 훈춘현에서 발견된 발해의 이불병좌상입니다. ②번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입니다 ③번 통일 신라의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니다.④번 6세기부터 7세기 경에 제작된 금동미륵보상 반가 사유상입니다. 신라와 백제 중 어느 나라의 문화유산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발해의 문화유산은 아니라는 거죠 ⑤번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입니다. 정답은 ①번입니다. 


소중한 우리의 역사 지켜야 될 우리의 역사인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증거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 스스로 고려 국왕이라 칭한 부분과 발해의 지배층 중에 대씨와 고구려 왕족인 고씨가 많은 점이 고구려를 계승한 증거입니다. 무엇보다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바로 고구려 사람입니다. 문화적으로도 발해 지배층의 문화는 고구려 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발해의 주거지에서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난방 장치인 온돌이 발견되고 있으며 무덤에서도 고구려 무덤의 독특한 양식인 모줄임천장 구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해의 벽돌과 기와 무늬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상경에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석등이나 발해의 이불 병좌상도 고구려의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면서 당나라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시험의 오답으로 자주 등장하므로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발해의 서울인 상경성과 주작대로는  당의 장안 성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또한 정치 체제도 당의 3성 6부 체제를 받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명칭과 운영방식에 있어슨 독자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5번문제입니다. 
밑줄 그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키포인트는 어디인지 찾아보도록 합시다.  바로 동쪽 계루의 땅으로 들어가 동모산이라는 부분과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점차 그에게 들어갔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통하여  그는 대조영이고 그가 세운 나라는 발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부흥 운동을 벌이던 유민들은 대조영을 중심으로 말갈인과 연합하여 동모산 일대에서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그러면 보기를 보면서 정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ㄱ 8세기 초 당과 요서 지방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발해는 무왕 때 장문휴에게 당의 산둥 반도를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ㄴ 서해 항로를 개척하여 요서지방으로 진출한 것은 백제입니다. ㄷ 발해는 신라와의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신라도를 개설하여 사신을 교환하교 교역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정치적으로는 대립하였지만 경제적으로 교류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도 북한과는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대립관계이지만 경제적 인도적으로는 교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ㄹ 3세기 말에 선비족의 침입을 받아 세력이 쇠퇴한 것은 부여입니다.  정답은 ②번입니다.  


6번문제입니다. 
밑줄 그은 이 나라는 어디일까요? 자료속의 문화재가 영광탑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느 나라인지 금방 알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료속의 내용속에서 키포인트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라는 부분과 정효공주무덤이라는 부분이 키포인트입니다. 이 부분을 통하여 이 나라는  발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발해의 탑은 대부분 벽돌로 쌓은 전탑으로 무덤 위에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탑이 자료속에 있는 영광탑이니다. 현재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발해 탑입니다. 또 발해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많은 무덤이 발견되는데 그 중 문왕의 둘 째 딸 정혜 공주의 무덤은 굴식 돌방무덤이며 모줄임 천장 구조로 되어 있어 고구려 고분과 닯아 있습니다. 정효 공주의 무덤은 벽화가 그려진 벽돌 무덤입니다. 이러한 발해의 무덤 양식은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택지에서 발해에 대한 설명이 아닌 것을 찾아보돌고 하겠습니다. ①번 발해의 수출품은 주로 말, 모피,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 자기 등 수공업품이었습니다. ②번 발해는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③번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참고하여 중앙 정치 조직을 마련하였으나 그 명칭과 운영에서는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하엿으며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습니다 ④ 통일 신라는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하여 외사정을 파견하였고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⑤ 발해 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 고려 또는 고려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발해가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가진 국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7번문제입니다
밑줄 그은 황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키포인트를 찾아보도록 합시다  바로 대흥이라는 연호와 정효 공주입니다. 대흥이라는 연호는 발해 문왕의 연호이며 정효공주는 발해 문왕의 넷째 딸입니다. 그럼으로 밑줄 그은  황상은 8세기 후반 발해의 문왕입니다. 선택지를 보면서 정답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발해는 건국 직후부터 8세기 전반까지 당, 신라와 적대 관계를 이루며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②번 9세기 선왕 때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습니다. ③번 8세기 초 무왕 때 발해는 당의 산둥 반도를 공격하였습니다. 무왕은 무력을 쓰는 왕 무왕 이렇게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 싸웠다 공격하였다 등의 내용이 나오면 먼저 무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④번 나라가 성정함에 따라 보다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도가 필요했던 문왕은 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하였습니다. 또한 문왕은 당과 친선관계를 맺고 신라와도 사신을 교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의 3성 6부 관제를 수용하여 중앙 통치 기구를 정비하였습니다. ⑤번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모아 동모산을 근거지로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8번문제입니다
밑줄 그은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는 키포인트를 찾아보도록 합시다.  바로 상경성과 주작대로가 키포인트입니다.  상경성과 주작대로는  발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발해는 대내외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내세웠으며, 활발한 세력 확장의 결과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여 당의 장안성을 수용하여 상경성과 주작대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선택지를 보면서 정답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①번 발해는 9세기 전반 선왕 때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이 무렵 중국인들은 전성기를 이룬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②번 상경성 유적지에서 고구려 양식의 온돌 장치가 발견되어 발해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③번 발해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 고려국왕이라 칭하여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④번 발해의 중앙 통치체제는 당의 제로를 받아들여 3성 6부로 정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칭과 운영 방식에 있어서 독자성을 가졌습니다 당의 상서성에 해당하는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으며 정당성 아래 좌사정과 우사정을 두어 6부를 이원적으로 관할하였습니다 ⑤ 상수리 제도는 신라에서 시행된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서 실시된 제도입니다.  정답은 ⑤번입니다. 


9번문제입니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정말 학교시험 공무원 시험 수능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어디에서든지 자주 등장하는 단골문제입니다. 제시된 자료는 조선시대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라는 책입니다. 최초로 통일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밑줄 친 ㄱ 의 주장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을 선택지에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발해는 주자감을 세워 귀족 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쳤는데 이는 당의 국자감 관제를 수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②번 발해와 당의 교역품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③번 발해의 3성 6부제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이 나타나지만 3성 6부제 자체는 중국의 제도를 수용한 것입니다 ④번 발해의 수도 상경은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을 모방하여 만들어 졌습니다. ⑤번 발해 문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 자신을 고려 국왕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정답은 ⑤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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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정치·경제·사회·문화

1. 발해의 건국과 발전

2. 발해의 경제, 사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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